1900~1945

일제강점기, 식민도시의 건설

조선 내 일본인 거류지역에 유곽이 설치되어 운영된 데 비해 수원에는 유곽이 공식적으로 설치되지 않았다. 수원에 일본인이 최초로 들어온 것은 1900년으로 경성이나 인천에 비해 다소 늦은 편이다. 수원으로 일본인 이주가 본격화한 것은 1903-1904년경으로 수원에 식민농정을 구축하기 위해 일본인 농학자들을 파견하면서부터이다. 이후 수원에 권업모범장이 설치되고 동산농사주식회사 국무농장, 동양척식주식회사 등 일본인 회사들의 농장이 대규모로 설치되면서 수원은 일본인들의 주요 농업 이주지로 성장하였다. 가족 단위 농업 이주자를 중심으로 설립된 수원 일본인 사회는 남성 단신 이주자가 많았던 부산, 경성, 인천, 원산 등지의 일본인 이주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매매 업소와 유곽이 발달하지 않았다. 즉 초기 일본인 이주 지역에 비해 일본인 사회는 상대적으로 성구매 수요가 크지 않았다. 

  • 11900 수원에 최초의 일본인 이주 
  • 21904 러일전쟁 발발 
  • 31905 경부철도 개통 
  • 41906  수원 - 권업모범장(勸業模範場)설치 
  • 51907 관기제도의 폐지 
  • 61908 ‘기생 및 창기 단속령’ 제정  
    수원기생조합소 조직(1925년 화성권번으로 인가) 
  • 71916  대좌부창기취제규칙(貸座敷娼妓取締規則) 제정
    일본의 공창제 도입
  • 81919 수원기생들의 만세운동

920년대 수원 거주 일본인들이 운영하던 요릿집 8개소가 확인된다. 이 업소들은 화성 주변에 몰려있는데 관공서가 몰려 있는 성안 상권과 조선인 중심의 남문 상권이 강력하게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원역 일대 일본인 상권이 급속하게 성장했지만 화성 주변 상권이 사업적으로 유리했던 것이다. 이들 요릿집은 수원 기생들을 통해 영업하고 업소를 운영할 수 있었다.

  • 11931 수려선 개통 
  • 21937 수인선 개통 
  • 31945 해방 

1930년대부터 수원역을 중심으로 경부선, 수인선, 수려선이 종횡으로 연결되며 교통체계가 대폭 확충되었다. 사통발달의 요충지인 수원역을 이용하는 화물과 여객이 많이 늘어나서 수원역은 물산의 집산지이자 상업의 중심지로 성장해 갔다.      

1930년대 후반 경성, 개성, 인천, 수원 등의 도시를 중심으로 찻집, 요릿집과 선술집이 늘어나면서 유흥업이 크게 확산되었다. 수원 유흥업소들은 합법적으로 허가를 받고 활동하는 예기들을 두고 운영하는 요리집과 고녀(雇女)라고 하여 접대부를 고용하여 운영하는 선술집, 찻집, 음식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1942년에는 10개소의 요리점, 82개소의 선술집과 음식점이 운영되었다.

  • 1출처 <수원역 성매매집결지 폐쇄과정 백서> 2021, 수원시 
  • 2사진제공: 수원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