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1960년대 수많은 피난민과 이촌향도민이 수원역 일대에 몰려들면서, 매산로 1가와 고등동 경계에 형성된 육교마을과 동산마을에는 수원역 성매매집결지가 만들어진다. 1960년대 수원역 주변에는 완행열차에서 내린 가난한 사람들이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숙박시설인 하숙이 많았다. 숙박비보다 성매매 알선을 통해 얻는 이익이 커지면서 수원역 주변 무허가 하숙집들은 성매매에 더 주력하게 되었고, 성매매 여성을 고용하여 업소를 운영하기에 이른다. 이에 1960년대에 육교마을과 동산마을 일대에 집촌화된 성매매집결지가 형성되었다.
수원역은 군병력 이동의 주요 거점이 되었으며 수원역 인근에 피난민촌이 형성되었다. 피난민촌 입구에는 미군 보급창고와 군부대 막사가 있었고, 이때 이미 군인들을 상대로 하는 성매매가 이루어졌다.
고등동의 본격적인 '개발'의 변화는 1967년 경기도청의 이전과 1974년 서울-수원 구간 전철화로 인한 수원역 일대의 개발과 더불어 시작된다. 고등동은 다양한 계층을 수용하기 위한 목적의 다가구 다세대 주택들이 난립했고, 대규모 '집창촌'이 형성되었다.